나눔터

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주일 설교 2015/2/8]
  • 2015.02.08
  • 조회수 2855
  • 추천 0
주일 예배
2015년 2월 8일 (일)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무엘상 18:1-4
말씀 한의준 목사
기도 노시성 장로

세상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판단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의 겉모습 때문은 아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34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기준은 서로 사랑한다는 당위성을 넘어 정체성이라 할 것이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이런 사랑의 모델이다. 그들의 사랑은 어떠했는가?

첫째,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요나단은 사울의 왕자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이기고 사울을 알현하는 현장에는 요나단도 있었다. 요나단은 큰 감동을 받았다. 요나단도 용사다. 그는 왕자이며 동시에 장수였다. 그가 블레셋과 전쟁할 때 어린 부관 하나와 더불어 블레셋의 적진에 들어가 적군 20명을 죽인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이기는 계기가 되었다. 골리앗의 도전을 보고도 요나단은 출전하지 않았었다. 아버지 사울 때문이다. 사울이 두려워하고 전의를 상실한 때에 요나단이 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요나단은 다윗과 한 믿음, 한마음이었다. One in Sprit이라고 영어 성경은 말한다. (삼상 14:6) 요나단은 “승리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고 고백한다. (14:12) 에서 요나단은,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넘기시리라” 고 말한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다윗도 그랬다. (17:45)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고 그가 적을 우리에게 넘기시리라”고 말한다. 다윗과 요나단은 믿음 가운데 하나였다. 박일남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갈 길이 따로 있다” 고 노래하지만, 가는 길이 다르면믿음을 같이 할 수 없다. 믿고 안믿고는 두 개의 다른 길이다. 요나단과 다윗은 하나였다. 세속에서 말하는 “끈”과는 다르다. 그들은 “영혼에서 하나가 된 끈”이었다. 교회는 하나님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인다. 유유상종이라 믿음의 사람은 그들끼리 모인다.

행복은 무엇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끈이다. 부부도 그렇다. 서로 다르지만 이를 인정하고 서로 하나되기를 노력해는 것이 진정한 부부이다. 소금은 나토리움과 염소의 결합이다. 각각은 독극물이지만 화학적으로 결합하면 소금이 된다.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물자이다. 교회도 같다. 나홀로가 되면 독소가 된다. 모인 한사람, 한사람을 보면 모두가 죄인이고 독소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화학적 결합을 통해 소금이 되고 유익을 끼친다.

둘째, 언약에 기초한 사랑이었다. 믿음 안에서 거룩한 언약으로 맺어졌다. 히브리어 베렛(언약)의 뜻은 짐승을 둘로 조각 내고 당사자는 그 가운데로 지나감을 뜻한다. 언약을 위반하면 죽음이라는 의미이다. 창세기 15장,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짐승 사이로 하나님은 혼자서 지나가신다. 우리도 십자가의 언약은 우리의 부족함으로 주님이 혼자 지신 것이다.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도 믿음의 언약이다. 둘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켰다. 생명을 걸고 서로를 지킨다. 다윗이 요나단을 지켰고 요나단의 아들 무비보셋도 끝까지 지켰다. 인간의 사랑은 약하다. 깨지기 쉽다. 우리의 이기심 때문이다. 모든 관계가 믿음의 기초에 설 때 영원한 것이다.

셋째, 희생과 섬김으로 감당하는 사랑이다. 요나단은 자기 겉옷을 다윗에게 준다. 옷은 신분의 상징이었다. 그것을 주는 것은 너와 내가 동일하다는 뜻이다. 요나단이 다윗을 왕으로 여긴다는 뜻도 된다. 칼과 띠와 군북도 내준다. 생명을 주는 것과 같다. 말로만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는데 수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한국컴팻션 대표, 서정원 목사가, “고맙다”라는 책을 썼다. 백형병에 걸린 아이가 있었다. 서 목사는 골수이식을 자원하고 아이에게 자기 척수를 주었다. 그러나 의료사고로 둘 다 사경을 겪는다. 겨우 회복되었지만 얼마 후, 아이는 병이 재발한다. 다시 이식을 시도할 것인가? 성공 확률은 1%에 불과했으나 그는 다시 자원하였다. “골수 이식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이라는 어느 장로의 충고가 계기가 되었다. 그는 부끄러운 목사라는 타이틀을 붙여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그가 훌륭한 목사일 것이라 오해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무조건 매달리겠다”고 쓰여있었다. 사랑은 어려운 것이다. 수고와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수고를 무릅쓰고 사랑해야 할 사명이 있다.

새글 0 / 972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747 [주일 설교 2015/3/1] 2015.03.01 2549
746 밀알 장애우 봉사(2. 21, 2015)
2015.02.23 2445
745 [주일 설교 2015/2/22] 2015.02.22 2402
744 [주일 설교 2015/2/15] 2015.02.15 2513
743 [내 친구 위키 리] [2 2015.02.10 2722
742 [주일 설교 2015/2/8] 2015.02.08 2855
741 Showers of Blessing - 노숙자 봉사
2015.02.03 2408
740 [황강숙 집사께..QT 방송을 듣고] [6 2015.02.03 2696
739 [주일 설교 2015/2/1] 2015.02.01 2299
738 [국제 시장] 그 시대의 증언 [1 2015.01.27 2494
737 세상을 떠나며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 2월.. [1 2015.01.26 2352
736 나귀를 타신 왕 - 2월 15일 속회공과 2015.01.26 2317
735 양의 문이신 예수님 - 2월 8일 속회공과 2015.01.26 2356
734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2월 1일.. 2015.01.25 2309
733 [주일 설교 2015/1/25] [1 2015.01.25 2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