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2015년 3월 29일 (일)
사순절 여섯째주일 종려주일
“환호 속에 흐르는 눈물”
누가복음 19:28:44
말씀 한의준 목사
기도 윤용찬 장로
오늘은 종려주일(Palm Sunday)이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하던 날을 기념한다. 동시에 오늘은 고난주일이 시작되는 주일이기도 하다. 이 한 주간을 고난주일로 지킨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가시면 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셨다. 그 길이 고통과 고난의 길임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 가신다.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향하여 선뜻 가려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고난의 자리는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을 앞서 가신다.
한국의 경제가 어렵다. 청년 실업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태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십대 태반이 백수’임을 뜻한다. 실신시대라고도 한다. 실업과 신용불량의 시대임을 뜻한다. 청년들이 높이 비상해야 할 때 날개가 꺾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청년들이 3D 직종을 기피하여 많은 일감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이 실정이다. 3D는 Dirty, Difficult, Dangerous를 뜻한다. 이런 직업은 외국인을 고용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기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청년 실업이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교회에도 실신시대가 왔다. 어려운 일, 궂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 부활절 주일에 우리 교회가 장로를 뽑는다. 장로 직분은 힘든 자리다.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받으려고 골고다의 언덕에 오르신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으로 올라 가신다.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올라가신 길이다. 이 길은 죽음의 길이지만 우리에겐 구원의 길이다. 얼마 전 한국 영화 명량이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이기 때문에 온 국민의 인기를 끌었다. 명량에서 13척의 적은 숫자로 일본군을 무찌르는 장면은 우리를 감동케 한다. 신앙생활과 봉사에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모습에는 능력과 기적이 자리할 수 없다. 앞장 서야 기적이 생긴다. 베드로는 주님의 모습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본다. 그는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하였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오시고 용서하시고 위로하신다. 베드로는 새 사람이 된다. 봉사가 힘들지만 봉사와 헌신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헌신은 무엇인가?
첫째, 누구인가 해야하는 일은 내가 먼저 한다.
둘째, 언젠가 해야 할 일은 지금 행한다.
셋째, 어치피 해야 할 일은 내가 앞장 선다.
예수는 감람산을 지나신다. 감람산에서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거기서 제자들을 마을로 보낸다. 주인이 허락하고 나귀를 푼다. 나귀까지도 주님의 쓰심을 위해 그때,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어서다. 나의 인생을 나귀처럼 풀어서 주님에게 내 드려야 한다. 나를 풀어 주님에게 쓰임 받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웨슬레이 목사님과 홀리 클럽 운동에 참여했던 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1714-1770) 목사는 “나는 녹슬기 보다 달아 없어지기를 원한다” 고 말하였다.
백성들은 주님을 열광적으로 환영한다.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주님을 환영한다. 호산나를 부르짖는다. 바리새인들은 반발한다. 당신은 왜 말리지 않느냐는 뜻이다. 주님은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라고 대답하신다. 예수님은 왕이셨다. 스스로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신다. 메시아적 임재를 막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군중들의 외침은 저주로, 배신으로 바뀌었다. 환호 속에 배신이 감추어 있었다. 예수님이 우셨다. 왜 우셨을까?
첫째, 숨겨진 평화를 보지 못하는 백성들이 불쌍했다. 팍스 로마나와 달리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 지는 평화를 뜻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예루살렘 성은 망한다. AD 80년에 로마는 예루살렘을 멸망 시키지만 예수님의 메시지는 이런 역사적 패망외에 하나님과 관계가 파괴됨을 뜻하신 것이다. 종말은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는 것이다. 지금은 패륜의 시대다. 근래 미국에서 어느 한인 며느리가 시모를 살해하는 참혹한 사건이 있었다. 시대는 완악하고 패륜의 사람은 도처에 있다. 재물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시대다. 구원의 길을 모를 때 인간은 말할 수 없이 패악해 진다.
둘째, 알지 못하는 백성이 불쌍해서 우셨다. 우리는 때를 모른다. 독일의 비행기 사고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우신다. 불신의 시대를 향해 우시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우리다.
종려주일은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주간이다. 우리 인생에 온 십자가의 구원을 다시 깨닫고 세상에 전하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