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해 살고 죽은 대통령]
링컨 대통령 시해 150주년을 맞이해서
150년 전 오늘, 1865년 4월 15일은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날은 링컨이 모처럼 극장에 갔다. 링컨의 일생을 통해 가장 큰 행복을 느낀 날이었다. 바로 엿새 전, 4월 9일에는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의 항복을 받아 내고 그의 기분은 좀 들떠 있었다. 전쟁으로 75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링컨도 기진 맥진했던 터였다. “전쟁이 내 삶을 통채 삼켜 버렸어. 생전에 전쟁의 끝을 볼 수나 있을까?” 라고 그는 측근에게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의 심정은 이렇게 가라앉아 있던 터였다.
그가 살해되던 바로 전날, 14일 오후, 그는 마차 속에서 부인에게 말한다. “부인, 전쟁이 곧 끝날 것 같아. 앞으로는 우리가 더 밝은 삶을 살게 될 것이야.” 전쟁 중에 아들 윌리를 잃기도 하였다. 그의 삶은 온통 참담하기만 하였다. 비참한 전쟁,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 더는 젊은 생명을 전쟁터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링컨에게는 밝은 미래만 남은듯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꿈에 불과했다. 시인 월트 휘트먼이 읊었던 것 처럼, “침울한 눈물의 밤, 링컨은 이 전쟁의 마지막 희생자가 된” 것이다.
링컨은 개선 장군처럼 포드 극장에 도착했다. 군중은 환호하였다. “영도자 만세!” 그러나 이어서, 단발의 총성, 암살자가 휘두르는 칼날의 섬광, 무대의 혼란, 그리고 암살자의 외침, “ Sic semper tyrannis” 율리우스 카이자를 살해하며 부르짖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외침을 링컨의 암살자도 외친다. 이어서 달아나는 암살자, 말 달리는 소리, 난장판이 된 극장의 마루 바닥에서 죽어가는 대통령-대통령은 길 건너 어느 하숙집의 뒷방에 옮겨졌다. 그리고 그날 자정에서 새벽에 걸쳐 운명의 시간이 지속된다.
그러나 그는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은 슬픔에 빠졌다. 말할 수 없던 환희가 상상도 못할 슬픔과 울음소리로 바뀐 것이다. 백만 명의 미국인이 그의 영전 (시신)에 참배했다. 그의 영구는 필라델파아, 뉴욕, 시카고 등 북부의 12개 대도시에서 공개 안치되었다. 워싱턴에서 일리노이까지 열자로 운구되는 동안 700만이 장례 행렬을 참관하였다.
150년이 지난 오늘 아브라함 링컨의 죽음은 우리 (미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가 인권을 위해 순국한 대통령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링컨은 노예해방 선언과 13 차 헌법개정을 통해 노예제를 폐지하는데 기여했지만 그의 마지막 연설을 통해 흑인의 참정권을 주창했다. 그가 백악관 이층의 창문에서 연설할 동안 청중 가운데는 미래의 암살범 윌케스 부츠(John Wilkes Booth)도 끼어 있었다. 그는 증오심에 불타 링컨의 암살을 결심하고 사흘 뒤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시해 사건은 미국 정부의 제도가 탄탄함을 확인해 주었다. 1865년 미국의 정치 제도는 가장 큰 시련을 겪었으나 이를 극복했고 세계의 지배적 국가로 우뚝 섰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한 사람, 그가 비록 링컨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라도, 한 개인을 초월하는 힘을 보였다.
링컨의 죽음은 그를 지지했던 북부 (Union)에 큰 손실을 주었다. 부통령으로 링컨에 이어 대통령이 된 앤드류 존슨의 계승이다. 그를 암살하려던 암살자가 미리 겁을 먹고 임무를 포기하지 않았던들 그도 죽었을지 모른다. 거칠고 경직된 그의 인품이 전후 재건을 더디게 하였다. 링컨이 생각하듯 재건, 복구는 실질적 정치가 관건이었으나 존슨은 이런 능력을 결핍하였다. 남부를 연방에 복귀하려는 열망, 또 그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로서 해방된 흑인들의 상처를 꾀매는데 역부족이었다. 결국 북과 남의 화해를 위해 흑인 해방노예들의 인권을 희생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 샐책은 후에 오랜 동안 인종간의 관계에 큰 독소가 된다.
링컨의 죽음은 지도력, 특히 백악관 주인이 누구인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 해 준다. 링컨은 자유와 연방의 유지, 모든 국민의 평등을 위해 살았다.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의 위대함과 그 예외적 존재성을 아는 대통령이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며 링컨과 같은 인물을 추모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인물을 길러내야 하고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James L. Swanson 과 Michael F. Bishop 공저
2015. 4. 11. 월스트리트 저널에 계재된 기사
번역 이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