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분신 노트북을 잃고]
여러 해 동안 마치 내 분신과도 같았던 노트북 컴퓨터를 잃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들여 보다가 머그를 쓰러뜨리고 쏟아진 커피가 손 쓸 새도 없이 내 분신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흘린 커피를 닦아내고 젖은 게 마르면 깨어나지 않을까 했지만 내 기대는 무위에 그치고 끝내 컴퓨터는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애플 스토어를 찾았지만 수리를 포기한 채 귀가하였다. 수리비가 8백 달러나 되어 신품을 구입하는 편이 훨씬 낳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거금을 들여 수리해도 헌 놈이 어디 새 것만 같을 것인가? 인간의 경우나 비슷하다. 흔히 심장마비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면 병원 응급실로 달려 가지만 응급실에서도 결국 환자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얼핏, 그게 무슨 이야기 거리가 될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저 사고로 치부할 자그마한 일이 아니다. 노트북은 일 년 열두 달, 잠자리에 들 시간을 빼고는 늘 손에서 놓는 일이 없던 나의 분신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컴퓨터를 열어본다. 중요한 메일이나 뉴스가 있을까 해서보다는 오랜 습관이다. 글도 쓰고 신문도 읽고 드라마도 본다. 주일에 교회에도 휴대한다. 목사님의 설교를 받아 쓰고 교회 게시판에 올리는 게 내 임무가 된지 벌써 오래 되었다. 내가 올리는 설교의 요약을 꽤 많은 교우들이 읽는다. 그런 삶의 도구를 순식간에 잃은 것이다.
집에는 여러 대의 컴퓨터가 있다. 책상 위에 놓는 데스크 톱에서 작게는 타블렛과 심지어 스마트 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이 쓰는 컴퓨터는 종류도 여러가지지다. 나도 여늬 사람들과 같이 여러 대의 컴퓨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말 분신 처럼 쓰는 것은 아이패드와 노트북 컴퓨터다. 아이패드는 가장 핸디하다. 그러나 긴 문장을 타자를 쳐서 작성하는데는 불편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스크린에 있는 키를 두드리는 건 물론, 아이패도 용 키보드를 별도로 장착했지만 긴 글에는 역시 키보드의 사이즈가 커야 한다. 데스크톱은 큰 키보드가 있어서 글쓰기는 편리하지만 기계 자체가 고정이고 이동성이 없는 게 흠이다. 키보드도 사용이 편리하고 휴대하기 좋은 노트북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노트북 컴퓨터는 무릎에 올려놓는다 해서 라 랩톱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러 해 전에 애플의 맥북 프로 랩톱을 구입하고 손때가 묻어 비록 볼품이 전과 같지 않아도 오랜 세월 나와 삶을 같이한 노트북 검퓨터이다. 그런 동반자를 상실하였다. 오랜 세월 신형이 나와도 교환하지 않고 사용해 온 내 랩톱을 커피를 쏟아 없애다니. 혹 주인의 사랑을 두고 커피와 컴퓨터가 시샘을 한 건 아닐까? 어쩜 커피 쪽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내가 미웠을지도 모른다. 주인의 사랑을 그렇게도 빼앗아 가는 노트북이란 놈에게 몽니를 부렸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나는 노트북을 치우치게 사랑하였다. 일테면 데스크톱이 조강지처이고 노트북이나 타블렛이 애인일지도 모르는데. 사고를 겪으며 나는 노트북 컴퓨터의 취약점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이라도 액체가 들어가면 장애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노트북이 액체의 침투에 가장 약하게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데스크톱은 키보드와 본체가 별도로 되어 있다. 근래 일체형이 나오지만 모니터와 콘트롤 박스가 일체일뿐 아마 키보드는 별개일 것이다. 물을 엎질러도 키보드가 젖지 본체까지 침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랩톱은 본체와 키보드가 일체형이다. 물을 엎지르면 키보드의 틈새를 통해 내부의 통제 부분을 손상하는 것이다.
최고의 기술을 구사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커피만 엎질러도 못 쓰게 되는 컴퓨터에 속수 무책일까? 많은 신제품을 팔기 위한 영업전략이라면 원대한 미래를 위하여 재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