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9일 나는 미국 시민권을 받는다. 미국 이민법은 영주권을 얻고 5년을 경과한 영주권자에게 미국 국적을 얻는 자격을 주고 있다. 따라서 보통 미국에 이민 와서 5년의 연한이 차면 필요한 절차를 밟아 국적을 취득하고 시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 온지 15년이 되어가고 영주권을 받은지도 10년에 이르니 시민권을 취득한다고 특별할 게 없다. 그래도 내년에는 영구 귀국을 한다며 이제 와서 시민권을 취득하는가? 그 사연은 이러하다.
사실은 오랜동안 숙고하였다. 받고자 했으면 벌써 받았을 것을 이제까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법적인 고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태어나고 평생을 보낸 고국 한국에 대한 미련이 컸다. 그렇게 쉽게 벗어 버릴 수 있는 게 한국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가 나의 결심을 이끈 요인이다. 하나는 내년으로 예정하고 있는 영구 귀국이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복수 국적 허용이다. 귀국을 작정하면서 영주권을 어찌 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영주권을 유지하려면 미국을 6개월 이상 벗어나서는 안된다. 출국해서 6개월이 지나면 영주권을 포기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한국이냐 미국이냐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영주권을 버렸을 것이다. 그러할 때 한국에서 복수 국적 허용이라는 새 법이 생긴 것이다.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아도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도 좋지 않을 까, 이것이 내가 미국 시민권을 얻는 동기이다.
나는 내년 후반에 영구 귀국을 희망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희망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우리 나이가 벌써 팔십에 이르지 않았는가? 딱 부러지게 나의 계획이 실현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원하더라도 불의의 여건들이 막을지도 모른다.
9년전, 영주권을 신청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 시민권을 받는 과정도 순풍에 돛을 단듯 모든 게 순조로웠다. 전문가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수수료를 내고 서류를 우편으로 보낸 게 지난 6월 말이었다. 이민 당국의 정보로는 신청하면 약 9개월이 걸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11월 19일에 모든 절차가 끝나고 증서를 받는데 까지 딱 5개월이 걸렸다. 세상은 때로는 너무 이상하다. 미국에서 살다 보면 영주권이 정말로 절실히 필요하여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지로 본다.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10년을 기다려도 아직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어렵고 꼭 절실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쉽게 나오는 것일까?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젊은 인력들에게 좀더 개방하고 나는 조금 뒤로 물러가게 해도 좋을 것이건만.
우리 아내는 이번에도 나와 함께 미국 시민이 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에 영구 귀국하면 그만이지 꼭 미국 시민권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 생각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무슨 운명의 장란일까. 내가 태어난 시대는 일제 하였다. 아마도 일본 국민으로 태어났겠지. 해방이 되었다. 한국 국민의 자격을 탈환했었지. 그런데 노래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다니. 어떤 때는 나라의 비운에 의해서 또 어떤 때는 글로벌 시대의 여파로 나는 평생에 세번 다른 나라의 시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