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3-15]
종교가 생길 때부터, 영성과 지성, 믿음과 지식의 대립은 존재하였다.
영성이 깊었던 교부들 가운데도, 테리토리안은 그의 유명한 말,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는 명제를 던졌다.
예루살렘은 신앙과 영성을 대표하고, 아테네는 철학과 과학, 즉 지식의 세계를 대표하였다.
"신앙은 불합리한 까닭에 진리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영성과 신앙 앞에서 지성과 학문을 비판한 대표적 교부였다.
그러나, 안셀모스는 달랐다.
믿음과 이해는 공존하며 "앎을 얻고자 믿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지식과 지성은 영성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생각이다.
둘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협력한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후에도 이어져 왔다.
성어거스틴이 계승하였고 근대에 이르러는 요한 칼빈도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이도 이 흐름에 같이 하였다.
웨슬레이는 이런 기본적이 생각에 덧붙여, 유명한 사면형 신학 (Wesleyan Quadrilateral) 을 주장하였다.
첫째가 성경이요
둘째가 전통히요
셋째가 경험이요
넷째가 이성이다.
이런 신학의 바탕 위에 믿음 생활을 하는 감리교인은 행복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다.
갈대는 약한 생물의 상징이다.
성경에서도 "상한 갈대를 껶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한다.
바람이 불어와도 곧 껶일 듯한 갈대, 사람은 그렇게 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만물의 영장이요 만물의 위에 서게 된 까닭은
갈대는 갈대로되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표현했다.
데까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말하기도 하였다.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 부른다.
호모는 인류를 지칭하며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스스로를 닮아 지으셨다.
Imago Dei 는 이를 뜻하는 라틴어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영성에 이어진다.
철학자, 폴 부르제는
"사는대로 생각하면 되는대로 살고, 생각하며 살아야 바르게 산다" 고 정의하기도 했다.
지성, 지식은 영성에 이르는 영성에 이르는 다리이다.
우리는 믿기 위해 알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알기 위해 믿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의 오묘하신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을 알기도 믿기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