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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주일 설교 2016/3/20]
  • 2016.03.20
  • 조회수 2784
  • 추천 0
주일 예배
2016년 3월 20일 (일)
사순절 여섯째주일 종려주일
“다시 믿음으로(5)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사무엘상 13:8-15
말씀 한의준 목사
기도 김호세 /선주상 장로

넬슨 만델라는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다. 그의 자서전에 실린 이야기다. 딸이 감옥에 찾아와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을 때, 그는 “Hope” 이라고 지어 주었다. 평생을 감옥에서 보냈으나 그는 희망을 잃은 일이 없다. 27년만에 석방된 후 그는 원수를 용서하였다. 그는 감옥에서도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고 이것이 그를 견디게 하였다. 그의 믿음은 “기다림”이었다. 우리 한국인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다. 오죽하면 한국인의 대표적 묘사가 “빨리 빨리일까?” 사탕을 깨물어 먹는 민족은 한국인 밖에 없다. 커피 자판기에서도 지긋이 참지 못한다. 컵을 붙잡고 커피가 나오기를 초조히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지 못하면 놓치는 게 많다.

사울은 40세에 왕이 되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과의 전쟁 이야기다. 사울의 군대는 믹마스에 진을 친다. 대적 불레셋은 대군이었다. 전차도 많고 기병도 많았다. 병사는 해변의 모래와 같았다. 그들의 침공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기가 죽었다. 모두가 도망하고 숨는다.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백성은 패닉에 처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승전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이 함께 싸우신다는 믿음에서다. 사울도 이를 안다. 사무엘은 은퇴하고 사울이 왕이 되었으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사무엘의 몫이었다. 사무엘이 이레 후에 가겠다고 했으나 기다려도 그는 도착하지 않는다. 이레가 되어도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사울이 더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번제를 드린다. 사무엘이 도착했다. 사무엘이 이를 추궁하고 질책한다. 사울은 부득이 번제를 드렸다고 변명한다. 백성은 흩어지고, 사무엘이 정한 날에 도착하지 않았으며, 불레셋 사람들이 길갈로 내려오겠으므로 부득이 번제를 지냈다고 변명한다.

우리도 늘 변명한다. 상황은 부득이했다. 그러나 부득이 하다는 변명 가운데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을 내세운 불신앙이 감추어져 있다. 부득이 하다고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믿음이 부득이한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며 언제나 동일하시다. 우리의 믿음도 절대적이고 동일해야 한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참된 믿음이다. 사울이 기다리지 못하고 상황을 졸속하게 판단한 것은 믿음의 결여다. 그는 기다렸어야 한다. 사람은 정상(情狀)에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정상에 흔들리지 않으신다. 사울의 판단에는 교만이 있고 불신앙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에 노하신다. 불신앙을 주목하시고 노하신다.

사무엘은 사울을 크게 질책한다. 사울의 행동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사울의 왕통이 끊기고 새 왕조가 올 것임을 알았다. 사울은 기다렸으나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7일간의 끝까지 지긋이 기다리지 않았다. 사울의 잘못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음이다.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이를 믿지 못했다. 그의 실패는 기다림의 실패, 믿음의 실패였다. 공허한 믿음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기다림에 실패하였다. 히브리어로 카바(기다림)라는 뜻은 또한 티크바이란 뜻이 있다. 즉 소망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믿음은 소망을 전제로 한다. 어렸을 때 나는 넉넉하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설날에 운동화를 사주겠다는 말씀을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졸랐으나 아버지는 설날이 되어서야 사주셨다. 그때의 기쁨을 이루 표현하기 어렵다. 운동화를 얻고 며칠 동안 방에서만 신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다림은,
첫째, 내 힘으로 기다린다. 그러나 자신에게 한계치가 있다. 거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둘째,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다린다. 이때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 남심 포인트를 넘으려면 소망이 있어야 한다. 물리학에서 임계점(臨界)이라는 정의가 있다. 사울은 임계점까지 기다리지 못하였다. 자신의 한계를 넘고 임계점까지 가는 것이 믿음이다. 훌륭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오직 1%의 다름이 있다. 1% 더 사랑하고 1% 더 친절하고..이런 1%가 사람을 다르게 한다. 그러나 임계점에 가까울 수록 기다리기 어렵다. 한계치까지 왔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야 한다. 임계점을 기다리는 1%의 믿음이 중요하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목회수상). 종려주일은 기다림의 주일이다. 당장 왕국을 세워 달라고 아우성치는 백성 가운데 우리도 서있는 것이 아닌가?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서 기다리는 것이다. 어느 여인에게 안수기도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얼마 후, 그녀를 다시 보았다. 전의 그 여인이 아니었다. 밝고 기쁜 모습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쌍둥이를 낳았다고 한다. 믿음은 기다림이다. 소망으로 기다리는 믿음을 갖자.
  • 천명종심2016.03.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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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계점의 예]

    액체인 물은 1기압 100℃에서 수증기로 변한다. 따라서 1기압하에서는 100℃ 이상의 온도에서 액체인 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100℃ 이상의 온도에서 물을 액체 상태 그대로 유지하려면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 압력을 가해서 218.3기압이 되면 물의 끓는점은 374.2℃가 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온도가 되면 압력을 계속 가해도 물은 더 이상 액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 온도를 물의 임계 온도라 하고, 이때의 압력을 임계 압력이라고 한다.

    공기는 1기압에서는 아무리 온도를 내려도 액체가 되지 않는다. 온도를 -140.7℃로 내리고 37.2기압보다 큰 압력을 가하면 비로소 액체가 된다. 즉, 공기의 임계 온도는 -140.7℃이고, 임계 압력은 37.2기압이다. 이 이하의 온도에서는 더 낮은 압력을 가해도 액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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