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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주일 설교 2016/5/15] 성령강림주일
  • 2016.05.15
  • 조회수 2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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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16년5월15일 (일) 성령강림주일
“예수의 시선으로”
누가복음 19:1-10
말씀 이경식 목사
기도 이상철 장로/김오성 장로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다. 어느 장로가 미국에 이민 와서 교회를 정하였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였다. 이 교회는 사람들이 갈급하게 느낀 감성을 잘 채워 주는 교회였다. 어느날 중보기도 때 목사님이 창문을 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창문을 통해 성령이 잘 들어오시라는 뜻이다. 그것을 보고 이 장로님은 그 교회를 떠났다. 성령은 창문으로 드나드는 존재가 아니다. 성령은 임재하고 역사하지만 창문으로 드나드는 물리적 존재가 아니다.

성령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하게 한다.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변화시킨다.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을 주는 것도 성령이다. 성령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되 변화의 가능성을 불어 넣으셨다. 사람의 마음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다. 어떤 사람은 악한 영의 영향으로 악한 삶에 빠진다. 술과 도박에 빠지는 사람, 일과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창조의 뜻에 부합하게 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느냐의 척도는 이런데 있다.

교회도 치우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성령을 받기 원하지만 그 성령이 어떤 성령이어야 할까? 예수님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고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신다. 오감을 가지고도 인간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람 답게 살아야 하고 성령은 그렇게 회심케 하여야 한다. 우리는 본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병자와 여자, 즉 약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은 상담학 교수이다. 무숙자들의 상담도 한다. 살인을 범한 사람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시설에 상담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회의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을 대한다. 무숙자, 살인 전과자를 만난 때 학생들은 그들을 타자라고 여기며 두려워 하다가, 점차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된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학생들의 눈에 변화가 일어난다.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라” 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그들을 보라” 고 말하였다. 무숙자들은 오직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을까? 부자들은 꼭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된 것일까? 돈이 없으면 돈을 벌수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거시적으로 세상을 볼줄 알아야 한다. 미국은 격차가 심하다. 부는 아주 소수가 지배한다. 흑인 인구들의 재산을 합하면 제로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교회의 시선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성령을 통해 안목을 키워야 한다. 예수의 말씀을 알아듣는 귀를 가져야 하고 그들을 향한 대변을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성령 받기를 원한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 삶에 변화가 생겨야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어느 청년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가난한 이민 가정의 청년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오직 아들이 그녀의 꿈이었다. 이 아들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긴 것을 고치려고 피부 관리를 받게 하다가 치료 중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화가 난 그녀는 피부 관리업소를 고소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자가 큰 소용돌이 휘말린다. 아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그래서 상담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어머니에게 있었다. 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했다. 삭개오는 키가 작고 직업도 미천하였다. 예수님은 연민의 시선으로 그를 보셨다. 삭개오는 큰 변화를 겪는다. 당신은 아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의 시선에는 사랑보다 분노와 피해 의식으로 차 있었다. 더 이상 아침에 아들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다음 상담에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의 방문을 열고 상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없어졌다. 어머니의 시선이 바뀌었다. 어머니의 시선이 바뀌자 아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눈을 떠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눈에는 좋은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나쁜 것도 보인다. 개인적 안목만이 시선의 전부가 아니라 교회적, 거시적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의 빈부차는 심각하다. 이런 차이는 신학적 문제이다. 눈을 떠서 본다는 것에는 복합적 의미가 있다. 세상에 편재한 약자를 보는 눈, 소경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 등등 이런 영적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자기에게는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은 무엇을 보는가? 여러가지 사람들 사이의 격차를 보는가? 예수님의 시선으로 보는 변화를 이룩하자.
  • 이광수2016.05.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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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는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가르치시는 이경식 목사님 (교수) 께서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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