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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어느 설날에 특별한 세배를 받으며


어느 설날에 특별한 세배를 받으며   


설날을 지키기가 쉽지는 않아도 지키고 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020 첫날에는 난생처음 이제   손자로부터 세배를 받았다. 아이도 이제까지 번도 해보지 않은 몸짓을 했다. “새해 ! 새해 !” 따라 하라는 아이 엄마의 마음이 간절했다. 옆에 있는 어른들도 차례대로 세배를 마친 각기 마디씩 거두었다. “준수도 해야지!” “ 옳치 잘한다!” “ 아유 착해라!” “ 우리 준수 보세요!” 아이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어른들이 둘러 난리가 났다. 준수가 드디어 세뱃돈 위에 얹혀진 거미베어를 보고, 먹고 싶은 충동심에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사리같은 손을 모아 이마 위에 대고, 몸을 이쪽 저쪽으로 배시시 꼬며 일어섰다 앉았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대로 엄마가 하라는 대로 준수는 떠듬 떠듬  할미” “새해” “” “많이 받으세요  라고 말했다. 순간, 자리에 함께 있던 가족은 함성을 지르며 웃음소리로 하나가 되었다. 딸도, 사위도, 친정엄마도, 그리고 동생네 식구들도 모두 금메달이라도 듯이 신나게 박수를 쳤다.

 

딸이 처음 손자를 데리고 우리 집에 들어 때를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딸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났는데, 대학원, 직장, 결혼을 거쳐  십년만에 백일된 손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위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사위는 학교가 있는 라스베가스로, 딸과 손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으로 들어오게 것이다. 당시 나는 세월동안 남편과 둘만이 남아 아이들이 떠난 집을 지키고 살고 있었기에, 딸이 손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도 좋겠느냐고 물어왔을 나는 두발 들고 환영했다. 그렇게 산지 어느듯 2  9개월, 사위는 공부를 마치고, 3 초에는 라스베가스에 있는 대학 병원에서 PA (Physician Assistant) 일을 시작하게 된다. 동안 딸은 둘째 아이를 낳았고,  7 개월 하은이는 이제 입을 떼어 소리를 내고, 몸을 들어주면 발로 땅을 치며 꿍꿍 뛰기도 한다. 지금도 내가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은 신기하기만 하다.  


막상 함께 살다보니 마음은 원하나 몸이 따르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면서 하나가 울면 둘째가 덩달아 우는데, 그러면 나는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하곤 했다. 너무나 많은 장난감들과 아기 용품들이 디딜 틈도 없이 집안에 널부러져 있어 머리가 혼란스럽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을 보면 아직도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은 그룻들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마음을 다독일 있었다. 남편과 둘이 살때보다 방문객이 늘어, 딸아이의 친구들과 아기를 보겠다고 오는 친지들의 손님치레로 진이 빠질 때가 많았다. 낮에 초인종 소리가 잦아지며 아마존 딜리버리로 박스들이 쌓여지면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마음의 아픔은 딸이 직장을 거절한 때였다. 딸은 버지니아에서 살면서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일을 했었다. 켈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근처로 직장을 옮겨달라고 요청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일자리가 주어졌는데 딸은 “NO” 라고 했다.  이유는 남편의 공부와 준수 양육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 며칠 생각해보고 결정할게.” 라고 딸은 말했고, 나는 당연히 딸이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준수를 나에게 맡기고 일하러 나가겠다고 하면  물론이지 엄마가 줄게.” 라고 대답까지 생각해 두었다. 그러나 딸의 결정은 나와 달랐다. 충격적 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는 복잡해졌다. ‘어머나 어떻게 돈도 없어 집에 들어와 살면서 일을 하겠다는 거야. 아이고 맞아?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구나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를 들쑤셨다. 대학원까지 공부시킨 공도 순간에 무너지는 같았고, 혜택 좋은 직장을 영영 놓칠까 걱정되어 며칠을 우울하게 지냈다. 딸에게 너는 처럼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너를 포기하지 말라 소리쳐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을 입에만 담고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물론 딸과 사는 동안 좋은 추억이 훨씬 많다. 한번은 생일 이었는데, 딸이 우리 만의 데이트를 준비했다.  얼리버드라는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었는데, 에그베네딕으로 소문난 집이라 나는 그것으로 주문하고 딸은 블루베리 펜케잌을 시켰다. 딸은 써빙하는 아가씨에게  “Today is my mom’s birthday”라며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우리는 서로 머리를 맛대고 정겹게 포즈를 취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은 같은데, 내용은 떠오르 않는다. 다만 매우 즐거웠고 킥킥대며 많이 웃었다는 기억만 마음에 남아 있다. 식사 후에, 우리는 커플사우나를 받으러 자리를 옮겼다. 은은한 조명 아래 방에 침대가 놓여 있는 곳에서 몸을 풀었다.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베이비씨터 덕분에 아이들에게서 자유로울 있어 우리는 마냥 풀어졌다. 슬슬 조름이 왔다. 잠에 빠져 들면서 진아야 기억해?  옛날에 우리 둘이, 중학교 졸업할 , 때도 우리 둘만 메리엇 호텔에서 하룻 잔거나는 딸에게 물었는데, 딸은 아무 대답이 없다. 아마 벌써 잠들었나 보다.  오전이라 밖은 밝은 낮인데 우리는 어둔 방에서 자고 나왔다.


사위의 졸업은 가족의 공동프로젝트였기에 우리는 모두 라스베가스로 모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아가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편과 , 딸과 손주는 엘에이에서, 그리고 사돈댁은 필라델피아에서 날라 오셨다. 졸업식 후에 벌어진 사진 촬영과 축하의 소용돌이 가운데 나와 딸은 서로 눈을 부딪히며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를 확실히 힘주어 그리며 빙긋이 웃었다. 우리가 결국 함께 해냈다는 사인이다. 딸이 졸업모자를 대신 쓰고 사위와 아이를 데리고 가족 사진을 찍었다. 행복해 보였다. 힘들다고 눈물을 뚝뚝 흘렸던 딸의 모습이 교차되며 딸이 자랑스러웠다.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서 엄마인 나를 실망시키기도 했으나, 남편을 세우고 자녀를 키우는 일에 열매를 거둔 딸이 이제는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로서 모든 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좋은 배움의 자리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언젠가 딸과 함께 저녁밥을 지으며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 동안 엄마랑 살면서 무엇이 가장  감사해?” 딸은 동안 엄마가 옆에 있어주어서 고마워라고 했다. 남편과 떨어져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시간들 속에 엄마가 함께 있어주어서 좋았다고 했다. 십년만에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살면서 엄마와 가까와져 좋았다고, 준수도 할머니를 따르고, 할머니를 통해 가족이란 것을 배우게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딸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딸이 동안의 나의 수고를 알아준 같아 끝이 찡했다.

 

 

 


이제 때가 되어, 딸은  자신의 집을 찾아 떠난다. 내가 많은 것을 주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비어있던 집을 울고 웃으며 사람 사는 공간으로 날마다 풍성한 일상으로 채워준 딸에게 나는 오히려 사랑의 빚을 진것같다. 지난 2 9개월이 아니였다면, 딸과 나와의 관계도 그저 바랜 옛날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엄마의 자리에서, 아내의 자리에서 입장이 같은 우리는 친해져서, 기대고 받쳐주는 든든한 사이가 되었다. 일상의 음식도 사람에게서 합해져 나와 저녁상이 더욱 다양해졌다.

나의 살아가는 방식도 딸로 인하여 좀더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인생이 사위와 손자로 인해 풍요로와 졌다. 동안 딸에게 해준 것만 생각하고 남편에게 힘들다고 불평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부끄럽다. 눈에 어질러 보이는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든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못보았다. 이제 담담한 마음으로 딸을 보내려한다. “아무리 바빠도 설날은 지켜. 지키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단다. 엄마가 살아보니 그래 미국이니 더더욱 한복입고 떡국먹고 새배드리는 한국인으로 살아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다시한번 품에서 딸을 날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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