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 방문 중에 동생의 앨범에서 얻었습니다.
제게는 아주 귀한 추억의 자료입니다.
어머니는 열 다섯 어린 나이에 시집 오셔서
서른 두 살에 저를 나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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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2011.06.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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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머물던 장마가 중부로 북상해서 오늘은 서울도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 합니다.
이런 가운데 텅빈 아들의 집에서 저는 75회째의 생일을 맞이합니다.
어떻게 내가 벌써 칠십의 중턱을 넘었을까.
어린 시절이 어제와 같건만..
못나게 부끄럼이 많아 노래도 율동도 따라 하지 못해
늘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던 유치원 시절...
언어도 이름도 그리고 주체성도 박탈 당한채
조선 아이인데도 일본 아이처럼 살아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
해방이, 그리고 독립이 무엇이기에 태극기를 들고 피나게 만세를 외쳤던 아홉 살의 어린아이...
육이오의 참혹했던 체험... 참전은 면하고 겨우 목숨을 건졌던 소년 시절...
왜 그 어린 시절이 그렇게 생생한 것일까요.
나는 세 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내 아우 면수는 채 돐이 안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기대를 등에 지고 훌훌 외국에 유학을 떠나고
그러던 어느 날, 돌연한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푸른 꿈을 접었던 슬프고 아픈 기억들...
참 험란한 시대를 살아서...벌써 인생의 말미에 이르렀군요.
생일을 맞이하니 우선 어머니의 사랑이 머리에 떠오르는 군요.
모든 것을 저에게 걸고 모든 것을 던져서 그렇게도 극진히 사랑하셨던 어머니 사랑이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험란한 시대였습니다.
아내는 저에게는 믿음의 인도자이고 선배였습니다.
완고한 가풍을 무릅쓰고 아내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고
이제껏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고비고비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닿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분의 지키심이 험한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감격에 넘쳐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하루를 보냅니다.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지만
가까이 어린 시절을 함께 나누었던 동생이 있습니다.
그 가족과 축복의 오찬을 함께 할 것입니다.
자비와 사랑의 눈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