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 리 (이한필)]
위키 리, 본명 이한필은 내 고교 동문이다. 한 때, 가요계를 휩쓸었던 그가 말기 암으로 임종을 앞두고 있다. 곧 요양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라지만 그의 임종이 가까웠음이 분명하다. 이 뉴스는 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 조금 먼저 조금 나중이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생의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한필은 중학교에 입학하여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밴드부에 들어갔다. 아직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그러나 경기중학교 밴드부는 중등학교 밴드 가운데 으뜸이었다. 유명한 양명식 코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파르타 식, 훈련으로 유명하다.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얼굴도 무섭게 생겼던 것 같다. 이한필은 키가 컸으나 몸이 약했다. 폐가 나빠서 원하던 나팔수 대신 북을 치게 되었다. 고수(鼓手)들은 후열에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제일 후열에는 경기중 밴드부의 자랑인 스사폰, 큰 나팔이 서고 아마 북을 치는 고수는 그 앞줄쯤에 섰던가? 그가 어려서도 폐를 앓았던 것은 아마 근간에 폐암으로 투병하고 그 암이 여러 부위에 퍼져 수습하기 어렵게 된 지금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듯 하다.
그가 노래를 부르고 위키 리 라는 예명으로 일세를 풍미할 것이라곤 나도 미처 내다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만인의 예상을 넘어 그는 유명한 가수에 인기인의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그와 가깝게 지내던 클래스 메이트에 김우중이 있었다. 대우 그룹의 김 회장 말이다. 김우중도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양명식 코치에 의해 쫓겨난다. 장난이 심하고 말을 안 들었기 때문이다. 김우중은 후에 유명한 실업인이 되었다. 그의 성공담이 또한 한 시대를 풍미하여 사람들의 입에 오른 전설적 인물이다. 김우중이 대우 그룹의 수장이 되고 서울역 앞에 대우빌딩이라는 당시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빌딩을 완성하자, 위키 리는 대우 빌딩의 지하에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이름을 "전하"라고 했고 우리는 거기 자주 드나들었다.
그 때 재치가 뛰어난 위키 리, 한필이 한 말은 평생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위트가 가득한 말이었다. "만일 양 코치가 나 (이한필)를 쫓아내고 김우중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김우중이 지금은 딴따라가 되고 내가 대우그룹의 회장이 됐을 줄 누가 알겠니?" 그는 마음이 선하고 언변이 좋은 친구였다.
얼마전 부터, 남가주에 이주해서 라디오 프로도 담당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했다. 그가 폐암으로 투병한지도 오래다. 두번이나 수술을 받고도 완치되지 못하고 이제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더는 아프지 않고 두렵지 않은 임종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성으로 그를 돌보는 부인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