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13일 프랑크푸르트 발트 경기장에서 열린 대 토고 전을 응원하고
어제(15일) 오후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하루를 비행기 안에서 보낸 것까지 모두 5박 6일의 일정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비행시간이 10 시간도 채 안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 모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여행 목적이 월드컵 대 토고전 관람이지만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그와 쾰른 등
라인 강 주변의 명소를 관광하기도 했습니다.
내게 독일은 25 년만의 방문이었습니다.
큰 아들 주흥과의 나이 차가 꼭 25 년이므로
독일을 마지막 찾았던 때가 주흥의 나이였습니다.
이제 고희의 나이에 다시 독일을 찾은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겉모습은 예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방문객인 "나"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야구모자를 눌러 쓰고, 백팩에 청바지를 입고
얼핏 봐서는 아이 같은 차림이었으나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었습니다.
4반 세기가 지난 지금,
나는 누가 뭐라해도 서쪽 하늘에 기울어 진 황혼이었습니다.
하이네가 읊었듯이 5월은 "계절의 여왕"이었습니다.
우리가 체류하는 5일 동안 날씨는 화창하고 온도는 섭씨 30도에 이르렀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며 특별히 사랑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5월 이외에는 날씨가 맑고 더운 계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가주에 사는 우리에게는 독일인의 이런 심정, 또는 시정(詩情)은 알기 어렵습니다.
더위를 즐기는 독일 사람들은 이 짤막한 한 달을 즐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많은 남자들이 웃통을 훌렁 벗어제킨채 길가를 걷거나 달리고 있었습니다.
길가의 카페는 독일인과 외국인, 특별히 붉은 셔츠를 입은 한국인이 어우러져 북쩍이고 있었습니다.
독일인에게 없이는 못 사는 것이 맥주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지방의 맥주인 Binding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모두 맥주 잔을 앞에 놓고 환담을 하거나, 지나는 사람을 보고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치 거대한 파도와 같이 물결치는 "붉은 악마"들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어디를 보아도 붉은 셔츠의 물결, 그리고 그들의 함성뿐이었습니다.
거리를 누비는 붉은 악마에게, 남여의 벽도, 나이의 벽도, 출신의 벽도 없는듯 했습니다.
모두 단 한가지, 오로지 "대한민국"뿐인 것 같았습니다.
붉은 악마의 모습은 어디 가나 같겠지만, 여기서는 특히 태극기를 몸에 감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독일 현지라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체류하는 기간 내내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는 내 가슴에 들어와 깊이 흔적을 남기는 특별한 어휘였습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시내 중심에 있는 Arabella Sheraton Grand Hotel이었습니다.
규모는 비할 수 없지만 위치나 품격은 서울의 롯테호텔에 비견합니다.
FIFA가 전체를 예약해서 그들을 통하지 않고는 값은 불문하고 들어 갈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FIFA의 귀빈으로 가득했고, 요금도 경기가 열리는 전날은 100만원 쯤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경험은 12일 오후에 우리 선수단이 같은 호텔에 들어온 것입니다.
쾰른에서 시합을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것입니다.
마침 버스가 문제를 일으켜 관광계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호텔에서 선수들을 환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어쩐지 어둡기만 했습니다.
선수들의 모습이 밝고 웅장하기는 커녕
너무나 긴장하고 초췌해서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과 다음날 경기의 전반에서 부진한 것이 결코 무관하지 않은듯 합니다.
(계속해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