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수단을 가까이서 본 것은 12일 오후와 13일에 걸쳐 모두 세 차례였습니다.
12일, 오후 1시 경, 호텔에 들어올 때; 6시 연습을 나갈 때;
그리고 13일은 정오 경, 우리 일행이 로비바에서 막 점심을 시작하고
선수단은 경기장을 향하여 호텔을 빠져 나갈 때였습니다.
우리는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고 있었으나 분위기는 대단히 산만했습니다.
언제 선수단이 로비에 나타날지 모르고 모두 거기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텔 로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축구협회의 정몽준 회장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홍구 전 총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밖에 지면의 인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모두 엘레베이터만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엘레베이터가 5층에 장시간 머무르면 선수들이 내려올 것입니다.
드디어 한, 두사람씩 선수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코칭 스태프가 먼저 나오고, 아드보카트 감독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어서, 홍명보 코치, 김남일, 박지성, 김남규, 이천수, 안정환, 설기현, 이을용 등의 모습이 뒤를 이었습니다.
후미에는 이운재가 따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큰 박수로 환호했지만 주장인 이운재가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표했을 뿐
모두가 눈을 내리깔거나 앞만 보고 급히 걸어 나갔습니다.
표정은 무거웠습니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아니면 몇몇 환영객들의 말대로 너무 군기가 "쎄서" 였을까?
호텔 현관에 세워있던 에쿠스를 비롯하여 거리는 "測育湄온?로 가득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 많은 차량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 출발한 탓인지 거리는 크게 붐비지 않았고 우리는 일찌감치 정해진 좌석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좌석은 전반에 토고가 그리고 후반에 대한민국이, 모두 세 개의 골을 쏘았던 골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후에 생각해 보니 세 개의 골이 우리쪽을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실감있게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티켓 값은 60 유로였습니다.)
모두 붉은 셔츠에 채양이 긴 스포츠 용 모자를 쓰고 붉은 배너 (사람들은 마플러라고 불렀으나...)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곧 응원 구호를 부르고 배너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경기장의 좌석이 차 감에 따라 대충 관중의 반 가량이 붉은 셔츠를 입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만원인 경기장에서 한국 응원단은 줄잡아 2만은 될 것 같았습니다.
"대.한.민.국." "O!~ KOREA!"를 부르는 응원소리가 마치 큰 우뢰소리 같았습니다.
저 한편에 노란 색깔의 유니폼을 입은 토고 응원단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것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기까지 한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큰 파도에 묻쳐버린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릅니다.
전광판에 코치와 선수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날까지도 팀을 떠났다고 했던 토고의 감독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어찌된 것일까?
시각은 오후 3시, 경기 전에 양국 국가가 연주되고 우리는 모두 일어났습니다.
먼저 애국가가 연주되고 모두 소리높여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이어서 토고 국가가 나올 차례입니다.
그런데 또 한번의 애국가가 울려 나오고 토고 선수진만 아니라
모두가 어리둥절한 가운데 거침없이 끝까지 연주되는 것입니다.
원래 나는 혹 우리 사물노리패가 또 한번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토고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북치고 장고치는 해프닝을 벌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으나 이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실수가 벌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독일이라해도, 이런 큰 행사를 일사불란 치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이에 비해
지난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보여준 치밀한 게임 운영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반전의 부진은 많은 응원단원들의 사기를 급히 냉각시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조급합니다.
토고의 선취 골이 "콱!"하는 소리를 내며 골 넷을 가르자, 성급하게 우리의 패전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기가 관람하는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자리를 떠야 골이 들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응원단은 목이 터지라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손뼉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꼭지점 댄스를 계속했습니다.
(결코 졸거나 잠자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반이 우리의 열세로 끝나고 쉬는 동안 한국 응원단의 모습은 많이 많이 위축되고 긴장한 것 같았습니다.
나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렇게 온 국민의 열정을 뒤에 두고, 이렇게 큰 응원단의 함성을 뒤로하고, 혹..혹.. 어떻게 하나?
그러나 하나님은 무심하지 않으십니다.
이천수의 기막힌, 참으로 기막힌, 프리킥이 성공하고
이어서 안정환의 승점 골이 네트를 가르자 나도, 우리도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요?
어떠면 게임의 내용은 텔레비죤을 보신 시청자들이 더 집중적으로 보고 잘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천수의 그림 같은 프리킥은 나에게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갑자기 출애굽기의 하나님,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싸우리니 너희는 잠잠히 나를 따르라. "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우리 앞에서 싸움을 싸우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잠잠히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급한 마음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전지전능, 무소불위(無所不爲)이신데
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며 쉽게 쉽게 결판을 내지 않으셨을까요?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시고, 다시 굳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기까지 셀 수 없는 시련을 겪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쉽게 승리를 안겨 주지 않으십니다. 왜일까요?
주님을 오래 오래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교만할까 경계하신 것입니다.
얼마전 IMF에 입사 면접을 갔을 때, 우리 둘째 아들이 첨예한 긴장의 시간을 이 말씀을 붙들고 평안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축구경기를 두고 너무 지나친 해석을 붙이는 것일까요?
너무 쉽게 승리를 주셔서 우리가 교만해 지면 주님을 기억하지 않을찌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장이신 주님께서 앞서 싸우시는데 잠잠히 따르지 않고 초조해 했던 우리의 불신이 부끄럽습니다.
토고 전은 이겼습니다.
"이기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기긴 이겼지만 간신히 이겼습니다.
간신히 이김으로 교만치 않게 하시고 겸손하게 다음 경기를 준비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