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는 고유명사인가, 보통명사인가? 여기서 말하는 북카페는 우리 교회에 있는 친교 공간이다. 따라서 고유명사라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세번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날이면 북카페에 들린다. 커피도 좋고 구운 베글도 맛깔스럽다. 삶은 계란은 고정메뉴이고 봉사하는 여집사님에 따라서는 바나나가 덤으로 나올 때도 있다. 이런 것을 다 합해야 값이라곤 겨우 2달러이다.
누구에게나 열린 장소지만 주로 시니어들의 단골이다. 장로님들, 그리고 권사님들로 때로는 붐비기도 한다. 탁자 하나에는 남자들이 앉고 다른 하나에는 여자들이 앉는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런 남녀의 구별이다. 왜 섞여서 자연스럽게 앉지 않고 마치 왕조시대 처럼 구별해 앉는 것인지? 마치 중동의 어느 나라에 온듯 착각할 때도 있다.
나는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기도가 끝나면 북카페로 간다. 다양한 이야기를 설파하는 입담 좋은 사람에서 부터, 듣기를 더 즐기는 듣기 전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시사에 통달하고 어떤 이는 스포츠에 박식하다. 대체로 정치, 특히 한국의 뉴스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의 관심이다. 월드컵 때는 축구가 화두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이 탈락한 뒤에는 화제도 바뀌었다. 어느 때는 세월호와 유병언의 죽음이 화두가 되기도 하였다. 교회라 해서 꼭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각양각색의 화제가 마치 모자이크 처럼 균형을 이룬다.
오늘은 성지 순례 이야기가 화제였다. 시작은 오늘 말씀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장로님들 가운데는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이 반반씩이었다.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은 다녀온 사람들에게 은근히 눌리게 마련이다. 물론 그 역(逆)도 진(眞)이다. 다녀온 사람들이 “갑”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을”이다.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낙타로 시내산에 오른 이야기는 감동이였다. 길은 두 갈래인데 하나는 넓고 곧은 길이고, 또하나 낙타가 다니는 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길이다. 칠흑과 같이 어두운데 좁은 길로 낙타 등에 타고 가는 것은 어쩜 아주 위험할지 모른다. 그 장로님은 부인만 낙타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따라간 것이다. 우스개소리를 좋아하는 한 젊은 장로가 말했다. 아내의 목숨을 가볍게 여긴 것이라고. 그러나 당사자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극구 부인한다. 낙타를 과속으로 모는 낙타 주인을 감시하려한 것이지 아내의 생명을 덜 소중하게 여길 이가 있느냐고.
듣고 있으면 놀랍다. 어쩜 70대 중반에서 80에 이르는 노인들이 그리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을까? 쟁론할 때 보면 그 논리가 예리하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른 것도 많다. 특히 성경을 문자대로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사실 여부 보다 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성지를 방문했던 어느 장로님의 말이다. “바늘 구멍이 진짜 바늘 구멍이 아니라 그보다는 꽤 큰 것이더라” 그 설명은 성지에 가보니 바늘구멍을 재현해 놓은 것이 있는데 꽤 크더라는 것이다. 실소했다. 클레어몬트의 라일리(Riley) 교수는 강의 시간에 재담으로 유명하다. 그는 낙타와 바늘구멍의 비유를 지프차가 도너츠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비하곤 해서 학생들을 웃겼다.
피라미드에 갔던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였다. 나는 이집트를 여러번 방문하고 피라미드에도 수차 올라간 일이 있다. 그런데 낙타에 부인을 태우고 시내산에 올랐다는 장로님도 기자(Giza)의 피라미드에 갔던 모양이다. 피라미드에 “내려갔다”고 표현하는 게 내 경험과 달랐다. 나는 올라갔기 때문이다. 웬일인가? 내 기억이 희미한 탓일까? 아니면 그분이 방문해서 내려갔다는 피라미드는 다른 것이였을까? 혼란했다. 그럴 때 내가 의지하는 것이 구글이다. 재빨리 구글에 물었다. 구글의 답은 이러하였다. 기자의 피라미드에는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거였다. 묘실이 모두 셋인데 제일 위의 묘실에는 바로왕이, 중간층 묘실에는 왕후가, 그리고 지하의 묘실은 어쩜 순사자와 부장물을 묻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왕의 묘실에 갔고 따라서 올라갔던 것이다. 지하로 내려간 체험자는 부장물을 묻은 곳에 내려갔을 것이다. 코끼리를 만지고 각기 체험을 늘어놓은 맹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기가 본 것만 믿고 남이 본것은 부정하지 않을까? 내일은 북카페의 화제가 무엇일까?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