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은지 후딱 한달을 넘겼다.
가진 유혹을 떨어버리고 오늘은 오랜만에 이발관에 갔다.
나는 머리카락이 매우 귀하다.
그래도 하나님 은혜일까?
젊어서도 이마가 고속도로와 같이 넓고 머리카락이 귀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두발이 조금은 남아서 이발관에 가야만 하는 게 은혜요 축복이다.
그래도 요즘 유혹이 많다.
이발관에 가고싶지 않은 유혹이다. 이번에도 온갖 생각을 다 했다.
그냥 버틸까? 옆머리만 조금 가위로 가다듬으면 '밀림의 사나이'라는 소리는 면할 것이다.
아예 뒷머리를 땋고 살까? 그건 아니다. 삼단 같이 굵은 머리를 댕기에 엮어 내리지는 못하더라도 겨우 손가락보다 가는 머리를 땋은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이발소로 향했다. 긴 머리를 하고 이발소에 가는 건 더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이발을 했다. 이발사가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머리가 많이 길었어요," 정곡을 찔러 나를 부끄럽게 만들건 뭔가?
내일은 L.A.에 간다. 자주 친구들과 점심을 하고 커피를 마시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하다. 친구, Robert과 둘이서만 만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기차로 갈 것이다. 늘 12시 10분에 유니언 역에 도착하던 것을 이번에는 한 시간 이르게 도착하고 어쩌면 좀 늦은 편으로 귀가할 것이다. 모처럼 만나는 친구와 더 긴 시간을 갖고 싶어서다.
그는 내 절친이다. 고교 시절, 한 동네에 살았고 무척이나 친했다. 그런 그가 이제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깎기 아들의 혼사를 앞두고 있다. 몇년전 부인을 암으로 먼저 보내고 홀아비인 그가 애지중지하는 늦깎기 아들을 장가보내는 것이다. 홀로 경사를 맞이하는 마음은 기쁘고도 쓸쓸할 것이다.
별로 도운 건 없지만 이번 혼사를 마음으로부터 기뻐한 나다. 나는 신부도 잘 안다. 같은 교회 교인의 따님인 까닭이다. 아빠는 장로요 엄마는 권사인 빼어난 가정의 따님이다. 그 부모를 보고 Robert에게 혼사를 적극 격려하였다. 그런 아빠, 엄마에게서 태어난 딸이 좋은 신부감이 아닐 수 없다는 게 내 권면의 이유다. 신랑의 양친을 잘 알기 때문에 신부측에 적극 권할 수 있었고 신부의 가정을 잘 알기 때문에 신랑측에게 권면할 수 있었다.
그런 결혼식이 10월 상순에 열리는데 나는 출석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래전에 한국에 가는 스케줄을 9월 하순으로 정했고 지금 이를 변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친구에게 한국에 가서 혼례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미루어왔다. 최근에서야 겨우 이메일로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바라는 데 그쳤다. 내일 만나는 건, 이런 연속선상에서이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실 것이다. 그리고 홀아비의 자택도 방문할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은 못하지만 내가 어떻게 도울까도 의논할 것이다. 또 깎을 머리도 없는데 미적거리다가 가진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이발소에 간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