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님이 돌아가신,,어제가 꼭 2년이 되었답니다.
할머님의 생각하면 가슴이 쨘~해와..터질것 같습니다.
제가15살에 뇌졸증에 쓰러지셔서,,장장 20년을 한결같이 누워만 계시다가 돌아 가신분,,
그나마 제가 미국올즘엔..남아있던 팔마져 마비가 오셨고,,돌아 가시기 2년전엔 무의식상태였지요.
할머님의 사랑을 생각하면,,끝도 한도 없답니다.
어릴적 밥먹는것 때문에 무진장 속쎡혀 드렸는데,,초등학교 시절,,1교시만 끝나면 할머님은 언제나 쵸코렛우유하고 삶아서 이뿌게 깐 삶은 밤을 속곳 주머니에 넣어 오시곤 했답니다,
아침밥 안먹는 외손녀딸을 끔찍히도 아끼셨었죠..
두아이를 키우면서,,이유식이다 머다 해가며 삶은밤을 까면서,,그때서야 알았지요,,삶은밤 서너개만 까면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는것을,,,울할머니 초등학교6년을 제게 1교시만 끝나면..삶을밤을 먹이셨는데,,얼마나 아프셨을까?..동그랗게 이뿌게 밤을 까기란 정말 힘들더군요,,
할머님은 유전적인 길치(길을 잘 헤매시는분)셨기에,,어릴적부터 똑순이(제 어릴적 별명이랍니다,,믿으실진 않겠지만),,제가 언제나 할머님을 모시고 다녔더랍니다.
전 한번 갔던 길을 잘 잊지 않는 아주 특별한 은사를 받고 태어났답니다.
할머니의 길잡이 요즘 말로는 인간 레비게이션이던 전,,할머님의 보물이였죠.
제가 없으면 할머님은 심방조차 힘드셨으니까요.
할머님은 이북에서 피난나와 정말 성공한 사업가였죠,
하지만 하나님께 약속한 기도가 있으셔서,,정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며 사시는 분이셨고.
날이면 날마다 성경책 갈피갈피,,돈을 넣어 갖고 다니시면서 중량천 일대 판자집 심방을 다니셨답니다.
겨울철에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으면 그집은 분명 쌀이 없거나 연탄이 없는집이라 생각 하시고,,쌀이나 연탄을 남몰래 배달 시키셨고,,지나가다가 아기 울음 소리가 나면 미역이나 소고기 한근씩 그집 부뚜막에 살며시 놓아 놓곤 하셨죠..
하지만 본인은,,신발 한켤레 사신는것 조차 아까우셔서,,초등학생들이 신던 하얀 운동화,,그것도 얼마나 열심히 빨아 신으셨는지,,색깔은 하얗기만해도,,너덜너덜하기 그지 없었답니다.
식구들이 머라해도,,속옷까지 꿰메 입어야 마음이 편하셨고,,
막내이모가 독일 유학가서 피아노 콩쿨 1등해서 사드린 아주 비싼 밍크코트 마져도 누군가에게 벗어 주시고 덜덜~떨며 집으로 돌아 오신분이니,,할말이 없는 분이셨더랍니다.
울 할머니 배움의 지식은 짧지만 아주 지혜스러운 분이셨고.
언제나 본인이 실천함으로 신앙을 심어 주신분이랍니다.
커피를 한잔 대접 하더라도,,할머님은 늘,,"애야~본전이 많이 들어 가야 커피도 맛있는 법이란다,,크림과 설탕 아끼지 말고 넣어라"..전 요즘도 가끔 한국식 커피를 타다 말고 울컥~할때가 있습니다.
밥맛이 없어 이것저것 반찬을 섞어가며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때도 가끔씩 울컥 합니다
밥맛 없어하면 할머님은 내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양풍이에 챔기를 아끼지 않고 들이 부어서,,언제나 제가 팅팅 거렸거든요,,거지밥도 아니구,,할머니 제발 밥맛 없게 개밥 주지 말라구,,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전 밥맛이 없으면,,그 개밥이 먹고파서 일부러 만들어 먹곤 합니다,,정말~나뿐 손녀딸,,이지요,,
정신이 살아 계실때 할머님은 미국에 있는 제게 하루에 한번씩 전화 하셨는데,,,전 가끔 짜증스럽게 받기도 했고 구찮아서 일부러 안받은 적도 있고,,바뿌다며 얼렁 끊으라고 한적도 많습니다,,
특별히 할말도 없었고요,,늘상 있는 전화이기에,,할머니 밥먹었어?..머 먹었어?..감기는 다 나았어?..엉,,공부 빨리 끝내고 갈께,,등등,,더 이상 할말도 없고,,웬지 짜증스러웠지요..
돌아가시기전에 그래도 봐야지 봐야지,,,매년 한국을 갔지만,,막상 가면,,할머님은 고작 서너번 들여다 보고,,저 놀기 바빴답니다,,
할머님이 돌아 가시기 바로 일주일전쯤..갑자기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좀 보내드려야겠다,,생각하고 인터넷으로 꽃바구니 한개 주문해서 보내드렸는데,,그게 저의 마지막 할머님께 드린 선물이 되어 버렸고,,두아이를 핑계삼아 장례식에 참석 못한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미국 처음와서 SAS라는 아주 편한 신발을 알게 되었을때,,신지 못하시더라도 꼭 사드리고 싶어,,신발을 사보내드렸더니,,그신발 5년을 갖고 계시다가 제가 임신했다고 하니,,도로 내어 주셨지요,,전 큰애 갖고 1년내내 그신발 신고 지냈고요,,
할머님은 저 천국에 아주 편히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할머니가 보고파지면,,가슴이 터질것 같습니다.
좀더 일찌기 철이 났더라면,,좀더 잘해 드렸을텐데,,
돌아가시고 나니,,제가 잘못한것만 떠오르고,,
한때는 할머니땜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무지하게 미워 했던적도 있었고요,,
도대체 이해가 안가더랍니다,,
우리 할머니처럼,,억세게 하나님 믿는 분도 없는데,,왜 저토록 힘든병을 그리 오래토록 주시는겐지,,주님이 그 큰뜻이 무언지,,정말 원망과 미움,,그래서 한동안 교회 가고픈 생각이 없기도 했고요,,
할머님을 만질수도 느낄수도 없지만,,그래도 제 마음엔..늘~계신답니다.
커피를 마실때도 비빔밥을 먹을때도 말이죠..
할머님의 추모예배,,한국엔 못갔지만,,다행히도 인터넷이란 효자컴이 있어서,,
네이버 화상으로 함께 할수 있었죠,,그 또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오늘은 할머니가 해주시던 주먹만한 왕만두가 먹고픕니다,,
꿩고기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꿩고기가 들어가야 제맛인데,,
오늘밤 할머님을 꿈속에서라도 만나뵙기를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