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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주일 설교 2016/4/17]
  • 2016.04.17
  • 조회수 2684
  • 추천 0
주일 예배
2016년 4월 17일 (일)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1) 백부장”
누가복음 7:1-10
말씀 한의준 목사
기도 김용승 장로/김호세 장로

오랜만에 운동을 갔다. 어느 백인이 묻는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을까? 총격, 강도, 쓰레기 같은 소식의 와중에 과연 좋은 소식도 있을까?” 라고 묻는다. 마침 TV에는 김정은이 나와서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장면이 보였다. 나는 “좋은 뉴스가 있기를 바란다” 고 답하였다. 우리 모두는 기쁜 뉴스를 기다린다. 감동과 훈훈한 뉴스에 목마른 시대다. 감동이 매마른 시대에 우리는 산다. 뭉클한 감동이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이 시대는 3무의 시대이다, 무관심, 무책임, 무감동의 시대에 우리는 산다. 감동이 없다면 삶은 삭막하다. 우리가 감동의 삶을 살기를 주님은 원하시지만 우리는 이에 부응하지 못한다. 주님을 감동케 하는 사람은 있을까? 있다면 그는 귀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감동을 나눌 수 있다면 귀한 일이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이란 설교 시리즈를 택한 이유도 여기 있다.

오늘은 백부장의 이야기다. 그가 예수님을 감동케 했다. 로마의 군인이요 엘리트인 백부장은 어떻게 예수님을 감동케 했을까?

첫째, 백부장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본문에는 “사랑”이란 말이 여러번 나온다. 백부장은 군인이요 군인으로 역량이 있었을 것이나 이를 소개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사랑의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 백부장의 종이 중풍병자라고 마태는 쓰고 있다. 로마시대에 종은 소유물이었다. “말을 하는 도구” 쯤으로 여기던 시대다. 종은 주인의 재산 목록이었다. 그런 종을 백부장은 사랑하였다. 병으로 쓸모 없는 종에 불과한 그를 백부장은 사랑하였다. 예수께 사람을 보내 그를 치료해 주시기를 청한다. 예수님은 놀라셨을 것이다. 로마는 노예제도를 기초로한 나라였다.

유대 장로들은 그가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어주었다고 말한다. 로마인의 신은 카이저였다. 그런 시대에 백부장이 유대인에게 회당을 지어주었다. 유대인을 사랑하고 그 문화도 사랑하였다. 그는 겉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마음 속으로 사랑하였다. 회당을 짓는데는 자신의 재물을 들였을 것이다. 주님도 감동하셨다. 우리는 순수한 마음을 대하면 감동한다. 어제는 장로 기도회가 있었다. 성지에서 가져온 포도주로 성찬식도 거행했다.

마치 주마등처럼 지난 8년의 세월이 은혜로 떠올랐다. 지난 8년은 교우들의 사랑으로 보낸 세월이었다. 헤르만 헷세의 단편, 오거스투스 (Augustus)에는 어느 엄마가 아이를 위한 한 가지 축복으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축복” 을 택했으나 아이는 행복하지 않다. “누구를 사랑하는 축복”을 받고서야 드디어 행복한 삶을 만난다. 사랑을 줄 때 사람은 행복해 진다. 나는 받는 사랑만 탐하지 않았을까? 주님은 우리가 사랑해 드린 것보다 우리를 더 깊게 사랑하셨다. 주후 2세기 사상가, 켈수스 (Celsus)는 "진실한 담화" (True Discourse)에서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비판하였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인은 인사를 나누기 전에 사랑하고, 서로 알지도 못하며 서로 사랑한다”고 비판하였다. 기독교인은 그렇게 사랑하였다. 현대 기독인은 사랑이 없다는 비판을 받지만 초대 기독교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사랑을 행하였다. 하바드대의 한 연구서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까, 행복의 비결을 연구한 결과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온다고 결론했다. 우리는 사랑을 행하지 못한다. 입으로 사랑하지만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생에 남는 것은 사랑뿐이다.

둘째, 백부장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벗들을 보내, 주님이 오심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께 간청하여 주님이 집에 들어오지 마시기를 청한다. 그는 지배 엘리트였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낮은 자리에 선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백부장의 집에 가시는 것은 예수님께 영광이었다. 그러나 백부장은 예수님의 오심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세상과는 다른 겸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겸손을 가진 자였다. 바울도 원래는 겸손하지 않았으나 주님을 만난 수 겸손해 졌다. 오거스틴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 말하였다. 가족 간에도 겸손이 중요하다. 겸손은 기쁨을 준다. 은혜는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셋째,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다. “말씀만 하소서” 라고 말한다. “오직 한 마디만 하소서” 가 원문이다.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이 어떻게 그렇게 컸을까? 우리 믿음은 말씀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암살”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정재가 암살단이었으나 돈을 받고 배신한 역으로 나온다.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전지현이 묻는다. “왜 배신했나?” 이정재는 답한다. “우리 나라가 독립할 줄 몰랐으니까..” 그에게 확신이 없었다. 이래서 확신은 중요하다. 백부장은 주님을 확신했다. 나는 얼마나 주님을 감동케하는 믿음의 삶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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