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은 내 평생에 기록될만 한 모임을 가졌다.
이처권 목사님을 멀리 코넥티컷으로 보내드리며 가진 조촐한 만찬이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캘리포니아를 떠나 동부로 이사하시는 것이다.
이처권 목사님 내외분과 저녁을 함께 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텍사스에서 한용석 목사님이 방문하셨을 때 점심을 한번 모셨었다.
그러나 그건 우리 교회와는 무관하였고 다만 한용석 목사님은
이 목사님과 나의 공동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한 교회를 섬겼는데 왜 떠나실 때가 되어서야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까?
많이 후회도 되었다.
아마도 인생이 그런 것인 모양이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는 것으로, 미래는 무한히 남아있는 것으로 우리는 착각한다.
그분이 멀리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기억이 없으나
교회에서 공식으로 광고한 것은 아니고 귓동냥으로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나 놀랍고 섭섭했는지 모른다.
서둘러 시간을 마련해서 함께 저녁을 한 것이 어제의 만찬이다.
원래 원로란 그런 것이다.
그래야 한다.
마치 물이나 공기처럼 평소에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 존재가 사라질 때는 큰 충격을 받게 마련이다.
이처권 목사님은 교회의 진정한 원로셨다.
교회가 설 때, 그리고 그 중흥의 계기를 마련할 때 크게 기여하셨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교인들의 기쁨과 아픔을 살피셨다.
우리 가족이 큰 수술을 받고 입원했을 때 그분은 먼 길을 달려오셨다.
위로하고 기도해 주셨던 생각이 지금도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 수 없다.
사모님은 언제나 목사님의 진정한, 불가분의 일부이셨다.
사모님의 따뜻한 품격을 빼고 이 목사님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림자 처럼 목사님을 받드셨던 사모님이 근래에 건강이 나쁘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따님과 사위가 사는 동부로 가신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게, 또 우리 교회를 떠나는 게 얼마나 섭섭하시겠는가?
추운 겨울에는 여기 오셔서 피한을 하시고 다시 따뜻한 봄에 동부에 가시라고 권면하고 위로하였다.
두분이 속히 건강을 회복해서 강건해 지시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가끔 캘리포니아를 찾으셔서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함께 남가주주님의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