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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주일 설교 2016/3/13] 여선교회 헌신예배
  • 2016.03.13
  • 조회수 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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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16년 3월 13일 (일)
사순절 다섯째주일/ 여선교회 헌신예배
“다시 믿음으로(4) 믿음은 용기입니다”
에스더 4:10-17
말씀 한의준 목사
사회 선희숙 집사
기도 송죠앤 집사

아내의 청력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어느 남편의 이야기이다. 아내를 걱정하여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환자 본인이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남편이 집에 와서 문을 열지만 아내는 듣지 못하는듯 했다. 그는 큰 소리로 말을 건다. “내가 왔어요,” “저녁은 무어지?” 그러나 아내는 역시 묵묵 부답이다. 남편은 자신이 너무 무심했었음을 크게 반성하였다. 그때 아내가 크게 소리쳤다. “당신은 몇번 말해야 알아 들어? 칼국수라고 했지않아?” 귀가 안들린 것은 아내가 아니요 남편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남의 문제만 보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혼란하다. 세상은 말세라고 한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믿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가 문제의 주인공인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 탓을 한다. 우리는 과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는가? 석학 폴 틸리히는 믿음과 종교에 회의를 갖는 젊은이들에게 실존 철학으로 접근하였다. 그는 “믿음은 다름 아니고 용기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자기의 이해를 포기하는 용기” 라고 하였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말한다.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믿음은 실증과 상식을 넘고 용기가 필요하다. 폴 틸리히는” Courage to Be” 라는 책에서 “신이 존재하는 게 아니고 신은 존재 자체이다,” 라고 말한다. 존재의 여부를 논란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인 하나님에게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고후 5:7) 보는 것으로 믿는 게 아니다.

믿음은 용기이다.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에스더이다. 바사의 아하스로 왕이 원래의 왕비를 폐하고 포로 출신인 에스더로 새 왕비를 삼는다. 에스더에게는 모르드게라는 후원자가 있다. 하만은 교만한 고관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절 받기를 원했으나 유다 사람들은 굴하지 않았다. 하만은 그들을 미워하여 죽이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왕을 회유하여 유다 백성을 죽이기로 정한다. 유대인에게는 위기였다. 그들은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에 4:8)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간청한다. 왕에게 조서를 폐기하도록 청해 달라는 내용이다. (11절) 에스더는 두려웠다. 왕의 부름 없이 궁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이었다. 왕이 금규를 내보이면 겨우 목숨이 신다. 에스더는 30일이나 왕을 만나지 못한 터였다.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은 자신을 지키려는 데서 비롯한다. 자신을 지키려는 데는 불안이 따른다.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한다. 에스더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런 두려움을 이기는 데는 모르드게의 말이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가 알게 한다. 용기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뛰어넘어 대의가 있어야 한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과 행동이 용기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나이로 태어 나서 할 일도 많건만…” 이란 군가가 있다. 갖 입영한 신병들도 이 군가를 부르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나로 말미암아 나의 부모가 단 잠을 잔다” 라는 가사가 두려움을 없앤다. 대의가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초기에는 독일의 군사력이 월등했다. 어느 베테란의 고백이다. 대적을 상대로 매일 출격을 할때, 두려움이 없던 것이 아니라, 조국과 동족을 지킨다는 대의가 두려움을 없앴다고 그는 고백하였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Freedom is not Free” 라고 씌여있다. 젊은 생명의 희생으로 나라가 서고 우리도 존재하는 것이다.

에스더가 두려움을 이기고 “죽으면 죽으리라” 는 유명한 말을 한다. 그리고 왕에게 나간다. 대의를 생각하며 용기를 낸다. 용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 금식하고 기도한다. “믿음은 용기” 라고 말할 때 그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한다. 아브라함도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미지의 땅으로 나갔을 때 그는 말씀을 신뢰하였다.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하고 천사의 고지를 받았을 때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답했을 때 믿음이 없이 할 수 없는 대답이다. 마틴 루터가 95조항의 선언문을 비텐부르크 성에 걸 때, 큰 압력을 받지만 보름즈의 청문회로 나간다. “나는 보름스에 간다”라고 하며 보름즈에 간다. 회유를 물리치며 “철회할 수 없다. 하나님이여 도우소서” 라고 단호히 말한다. 한 사람의 용기가 역사를 바꾸었다. 그의 동반자는 아내인 카탈리나였다. 두려워하는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상복을 입고 “하나님은 죽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죽었다” 고 말한다. 용기는 희생이다. 그러나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은 용기다. 용기에는 하나님이 항상 동행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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