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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주일 설교 2016/7/24]
  • 2016.07.24
  • 조회수 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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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16년 7월 24일 (일)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
에베소서 1:23
말씀 김낙인 목사
기도 윤규택 장로/김오성 장로

시대와 환경에 따라 교회의 겉모습은 변화하고 또 다양하다. 로마시대의 교회와 같이 화려한 모습의 교회 건축이 있는가 하면 터키에서 흔적을 볼 수 있듯이 돌로 소박하게 지은 초대 교회의 모습도 있다. 토굴에서 박해를 피했던 교회도 있고 한국에는 농촌의 초가집 교회도 있다. 교회는 계시와 예술로 하나님의 영광을 외관에 나타내려 했다. 교회의 겉모습은 촛대가 켜지고 꺼지듯이 명멸하였으나 그 내면의 본질은 영원하다.

초대 교회는 신앙고백만이 있었다. 그들은 신앙을 위해 모였고 이것이 교회가 되었다. 교회는 건물 중심이 아니라 만남이 중심이었다.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 간의 교제가 중심인 모임이 곧 교회였다. 장소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정이 교회일 수도 있고 여러 형태의 장소가 곧 교회였다. 초대교회는 하잘 것 없이 보였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고 외쳤다. 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만물을 충만케 하는가? 하나님의 영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겉 모습은 초라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어떤 것인가? 몸은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음이 우선이고 몸은 여기 따르는 것이다. 중풍 환자는 마음과 몸이 따르지 않는다. 온 몸이 함께 따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권위와 영광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다.

에스겔은 성전의 모습을 그렸다. 거기에는 구석구석 우상이 사는 것을 보여 준다. 우상은 어디에나 있다. 우상은 곧 하나님 위에 자기를 두는 것이다. “나” 가 중심이 되는 가치관이 바로 우상이다. 영어의 Sin이란 단어 가운데 I (나)가 있다. 돌아온 탕자의 에피소드에, 탕자인 동생이 돌아오자 그를 환대하는 아버지를 보며 장자가 노여워 한다. 그는 자기가 중심에서 밀린 것 같이 느낀 것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어린 손주들이 시샘하는 모습을 본다. 동생에게 관심이 쏠린 것을 느끼면 형은 샘을 낸다. “너는 예뻐” 라고 관심을 보이면 “동생도 예뻐” 라고 마음이 풀린다. 우리는 모두 나를 남의 위에 놓고 싶어 한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낙망한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도 있다. 어느 교회에서는 헌금을 돌려달라고 한 중진의 벗어난 행태도 알려졌다. 여러분은 교회를 사랑하는가?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가? 심방 때면 느끼는 일이 있다. 노약한 사람들의 공통된 기원은 몸을 회복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다. 여기는 예외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 드리는 것은 우리의 큰 축복이고 영광이다.

생명체는 자란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 믿는 자의 모습이다. 예수님도 자라셨다. 하나님은 장애물을 제거해 주시고 우리가 자라게 하신다. 어느 교회에서 있던 일이다. 어린 아이의 손이 어느날 장애를 일으켜 말라버렸다. 엄마는 기도했다. 문득 어릴적 의붓 아버지의 박해를 생각했다.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살아났다. 늘 분노와 미움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기도 가운데 그녀는 이를 풀도록 명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원망을 풀고 용서했다. 마음 속에 쓴 뿌리는 풀자 아이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의 손이 풀리고 돌아온 것이다. 우리 마음에 쓴 뿌리를 아직도 담고 있는가? 이 쓴 뿌리를 뽑아 버리자. 우리는 이런 쓴 뿌리를 마음에서 내보내고 마음과 몸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를 외쳐야 한다. 주님이 주신 믿음의 권위로 이런 악령들을 물리쳐야 한다. 건강한 교회는 이런 어두움을 물리치고 생기로 가득하다.

건강한 몸은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곳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좇고 (preaching, teaching, healing) 이를 닮아야 한다. 그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이다. 착한 일을 도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는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좇는 것이 착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소망임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야 한다. 예배와 양육과 선교는 교회의 선한 사명이다. 하루에 한가지 착한 일을 행하자. 우리 안에 머물지 말고 세상에서 착한 일을 행하자.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고 교인은 교인다워야 한다. 교회는 교회 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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