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아주 간단한 수술이지만 그 효험이 크다. 마치 찌들었던 유리창을 닦아내듯, 맑은 눈을 되찾았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서야 되찾았을까? 더 늦기 전에 왼쪽 눈도 닦아내야 하겠다.
아무리 작아도 수술은 수술이다. 우선 수술을 준비하는 의료기관의 준엄함에 다시 놀랐다. 팔목에는 질긴 플라스틱의 인식표를 걸었다. 준비하는 동안 침대에 앉아, 그리고 누어서 받은 의료진의 확인은 준엄했다.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를 묻고 내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의 이름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간호사를 위시해서 마취의사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다섯, 여섯 사람의 질문에 답하고 관문을 통과하였다.
물론 이것은 의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의료 선진국 미국에서도 가끔 의료 사고가 난다. 환자를 바꾼 경우도 있고 수술 부위를 착각한 경우도 있다. 수족을 절단하는 경우,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데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철저한 확인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수술 전력도 묻는다. 왜 수술 받았느냐고 물으면 곧 맹장 수술이나 복부 절개를 생각하게 되는지. 나는 배를 절개한 수술을 받은 일이 없다. 그래서 없다고 말했지만 없는 것과 기억을 못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젊어서 몇 차례의 작은 수술을 받았었다. 그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워서 기억에 남는 것은 치질 수술이였다. 국소 마취만 해서 멀쩡한 정신에 칼로 잘라내는 소리가 그렇게 예리하게 들릴 수 없었다. 그리고는 따스한 물에 엉덩이를 자주 담그는 것으로 아물게 했던 생각이 생생하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그 기억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장인은 항문과 의사이셨다. 꽤 지명도도 높았고 그래서 여러 식구들을 부양하실 수도 있었다. 나는 그분의 치료를 오래 받았다. 그분은 외과 의사인데도 몸에 칼을 대길 꺼리셨다. 늘 약물 치료에 의지하다 보니 내 치질은 고질이 되어 버렸었다. 그것을 수술로 시원하게 도려내고 그 후로 수십 년간 크게 고생은 하지 않고 견뎠다. 수년전에는 전립선 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거부하고 방사선 씨앗을 심어서 치료를 했다. 이런 저런 것을 꼼꼼히 들춰내니 나도 몸에 여러번 칼을 댄 것을 왜 이번에는 수술을 받은 일이 없다고 했을까?
정작 수술은 언제 시작하고 끝났는지 알 수도 없었다. 수면 마취 덕택이겠지. 하루 지나고 다시 "광명"을 회복했다. 수술을 받는다는 말이 주위에 알려졌지만 일부 와전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어느 권사님이 급히 카톡을 했다. "맹장 수술을 받아신다고요?" 그 남편이 백내장을 맹장이라 잘못 전한 모양이다. 이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을까? 어느 권사님은 문병을 왔다. 손에 아직도 따끈한 죽을 가지고. 수술 하면 역시 죽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밝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게 큰 축복인 것을 모르고 산다.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깨달으시라. 당신은 축복 가운데 사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