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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말복이 지났건만...남가주의 여름나기]
  • 2014.08.21
  • 조회수 2486
  • 추천 0
[남가주의 여름나기]

남가주에도 여름이 왔다. 소리도 없이 성큼 여름이 온 것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최고 온도가 100도를 넘나든다. 햇살은 뜨겁고 바람도 없다. 미국은 아직도 화씨(Fahrenheit)를 쓴다. 기온도 화씨, 체온도 화씨이다. 온도의 단위로 섭씨(Celsius)를 쓰던 내게는 아직도 헷갈린다. 곧장 머리에 꽂히지를 않는다. 섭씨가 아무래도 더 알기 쉽다. 0도에서는 물이 얼고, 100도에서는 끓어서 기화한다. 이것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워온 터다. 화씨의 기준은 무엇인가? 분명한 건100도가 넘으면 매우 덥다는 사실이다. 100도가 넘으면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작금의 기온이 100도를 넘나들었다. 내가 사는 풀러턴은 바다에서 한 시간 거리의 내륙이다. 따라서 바다에 가까운 곳에 비하여 다소 덥다. 요즘은 바닷가에 가까워 냉방 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들도 덥다고 야단이다. 수십년 사이에 이렇게 더운 날씨는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구 온란화 때문일까? 무더위가 도둑과 같이 온 것이다.

비교적 건강하던 나도 요즘 몸이 무겁다. 얼마 전에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날카로운 어지럼을 느꼈다. 휙 천정이 돌아가고 토할 것 같아 엉금엉금 기어서 화장실로 갔다. 다행히 구역이 멈추었지만 며칠이 지나도 몸이 쾌하지 않다. 머리가 흔들리고 눈도 명확하지 않다. 더위 탓일까, 아니면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나는 외출을 삼간다. 햇살이 센 백주에는 되도록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되도록 집에 칩거하기도 하고 냉방이 잘 된 ‘몰’ (mall)에 가서 걷기도 한다. ‘몰’에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곳곳에 소파가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여 이곳에 온다. 한국인들도 많다. 젊은이들도 있지만 나이 든 이들이 많다.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되도록 옷을 가볍게 입는다. 나도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근무복은 다르지만 보통 사람들의 평상시의 복장은 간편하다. 짧고 가벼운 반팔과 반바지를 입는다. 젊은 여성들의 복장은 날아갈듯 하다. “하의 실종”이라고 회자되는 핫팬츠에 잠자리 날개와 같은 얇은 옷을 걸친다. 신발은 샌달이다.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는 풍경도 드물지 않다. 젊은 여름은 싱싱하고 아름답다.

식사는 되도록 가볍게 한다. 채식을 하기도 하고 냉면을 먹기도 한다. 나는 냉면을 즐기는 편이다. 전에도 냉면 타령을 한 적이 있지만 여름에 냉면처럼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있을까? 며칠 전, 아주 이른 시간에 냉면을 먹으러 가든그로브에 간 일이 있다. 모란각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훤히 뚤린 하이웨이를 달려 식당에 이르는데는 채 20분이 안 걸렸다. 모란각은 탈북 가수 김용이 시작해서 꽤나 인기를 끌었던 식당이다. 체인으로 근처에 식당이 몇 곳 있었지만 지금은 가든그로브에 있는 게 유일하다. 가든그로브의 모란각은 인기가 정상급이어서 일찍 가거나 늦게 가지 않으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

이 식당은 음식의 맛도 좋거니와 값이 싸다. 면은 시시각각 뽑아내고 육수의 맛은 깊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냉면 한 그릇을 주문하면 작은 대접으로 하나를 더 준다. 일테면 일인분에 음식은 일인분의150%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잘 만든 빈대떡도 한 접시 제공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를 알겠다. 나는 모처럼 냉면으로 포식했다. 덤으로 나온 냉면을 근 그릇에 더하고 부치기 까지 먹으니 포식이 아닐 수 없다. 모란각은 그런 식당이다.

어렸을 때 한국의 여름은 어땠던가? 얼핏 추억으로 떠오르는 것에 목물이 있다. 찬물을 등에 끼얹어 치가 떨리도록 한번에 더위를 떨치는 목물 말이다. 목물은 우물 가에서 하는 게 정석이다. 우물 가에서 웃통을 벗고 엉거주춤 엎드려 뻗혀 자세를 취하면 두레박으로 찬 물 하나를 들어올린 어머니가 등에 물을 붓는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고 덜덜 떨만큼 시원해 하던 어린 시절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대가 바뀌어 방마다 샤워가 달렸건만 두레박으로 목물하던 시절이 얼마나 아름답게 떠오르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참외나 얼음에 잰 수박을 먹는다. 미국은 수박이 달다. 냉장고에 넣었던 수박을 이러저리 잘라서 먹는 맛도 좋으련만 그 옛날 얼음 가게에서 사온 얼음 덩이를 시칼로 부수고 거기에 담갔던 수박의 맛은 잊을 수 없다.

캘리포니아는 수영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우리 집은 자가용 수영장은 없지만 울타리 너머로 공동 수영장이 꽤나 잘 되어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수영장에 모이고 재잘거리는 소리가 조용할 때가 없다. 동네 공용이지만 좀 떨어진 집에서는 자동차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걸어서 이동하는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수영복을 입은채 거리를 활보한다. 나는 수영장에 가지 않는다. 수영장에 노인이 가는 것은 여기서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리비, 월 150달러는 꼬박 낸다. 내다 보기만 해도 여름을 느끼는 수영장 문화는 그러나 젊음의 생기를 주기도 한다.

요즘 남가주에는 산불이 많다. 샌디에고 카운테에는 벌써 3000 에이커가 넘는 임야가 산불로 소실되고 아직도 진화는 요원하다고 한다. 진화를 어렵게 하는 것은 샌타아나 바람이다. 덥고 건조한 데 바람이 강하게 부니 산불은 번지고 진화는 어렵다. 자칫 소방관들에 사상자도 생기고 주민들은 집을 잃기도 하는 여름 산불. 꼭 여름에만 산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여름이 산불의 계절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는 광대하다. 넓기도 하고 인구도 많다. 기후도 각양각색이다. 여름이라고 어디나 같은 것은 아니다. 내륙에 갈 수록 덥고 해변에 가까울수록 시원하다. 시원한 곳에는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에어컨이 없는 집이라고 얕보아서는 안된다. 시원해서 냉방장치가 필요 없는 곳은 집값이 더 비싸다. 주야로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더위를 견길 수 없는 곳은 집값이 싸다. 내가 사는 곳은 중간쯤 된다. 에어컨은 있지만 자주 켜지 않는다. 기후가 아주 덥지도 아주 시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동네에서 여름을 지낸다. 홍현에 올릴 글을 쓰면서..
  • 이광수2014.08.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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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썼던 글이다.
    여름이 한창이고 곧 가을이 오지만 뒤늦게 이 글을 올린다.

  • 이광수2014.08.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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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5시에 갑작이 정전이 됐다.
    온 동네가 캄캄하다.
    주일인데, 암흑 가운데서 준비는 어떻게 하며,
    차고 문은 매뉴얼로 작동을 해야 하나?
    우선 잠옷 바람으로 차고를 열고 차를 밖에 내놓았다.
    TV도 인터넷도 먹통이고 상황은 알 수 없다.
    아내는 휴대전등을 준비한다.
    나는 아이폰으로 정전 지역을 검색한다.
    아! 교회가 있는 롤랜드하이츠도 정전이로구나.
    어둠 속에서 더음어 세수도 하고 옷도 입었다.
    6시 반이 돼어서야 불이 들어왔다.
    북가주에 6.0 진도의 지진이 있었다는데
    그 여파일까? 아니면 단순한 고장인가?

    미국에서 일어나선 안되는 사고다.
    전기가 나가면 이렇께 꼼짝 못하는 세상, 시대에 우리는 산다.
    교회는 별 일이 없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주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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