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며느리가 버지니아에서 달려 온다. 주경의 아내다. 주경이 바쁜 일정을 던지고 캘리포니아로 달려 온지 8 일쩨. 마치 릴레이 경주 처럼 며느리가 와서 바통 터치를 하는 것이다. 2 년여 전,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급히 수술을 받을 때도 그들이 달려 왔었지. 암담한 고통의 시간을 함께 했었지.
아내는 위기를 넘겼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너무도 빨리 그리고 순조롭게 아내는 병을 이긴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라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버금 가는 묘약이 있었다면 그것은 가족의 사랑, "사랑의 묘약"이다.
우리는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 주말이면 전화로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한국에 미국의 동부에 흩어져 사는 피붙이들을 아련히 그리워 한 게 전부다. 그들과의 사랑은 담담한 것이었다. 마치 물이나 공기 같다고 할까? 그랬던 그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는 언제나 부모 옆에 달려오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환난의 극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뭉치는 것이다.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빼끔한 작은 구명도 보이지 않는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환난을 거의 벗어난 것이다. 다시 찬란한 빛의 세계로 접근하고 있고 입에서는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아들과 모처럼 둘이서 저녁을 했다. 어제 일이다. 처남 상철이 아내의 옆을 지킬 터이니 아들과 함께 외식을 하라는 것이다. 그는 같이 나가자는 내 간곡한 초청을 사양하였다. 부자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주경은 모처럼 일이 덜 바빴다고 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네가 가라, 네가 옆에서 환난의 부모를 지켜라!" 는 응답을 들었다고 한다. 다른 방법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네가 달려가 옆에서 도우라는 주님의 마음을 읽자, 티켓을 사고 달려 왔다고 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막연히 기도에 의지하기 보다,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달려 온 것이다. 주경은 어머니를 지키며, 그러나 일을 계속한다. 반은 휴가를 얻고 반은 재택 근무를 하는 것이라 한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막내 손자 명환을 생각한다. 산모가 난산으로 세상에 나오지 환난을 겪은 아이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고 하마터면 장착한 호흡기가 빠져 호흡이 끊일 뻔 하였다. 그 때도 남자 셋이서 가날픈 숨을 쉬며 인큐에 누어있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관찰했었지. 벌써 22년 전이다. 그가 소생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씩씩한 대학생이 되었다.남편이, 아들과 며느리가 옆에 있다고 어머니의 병이 기적과 같이 치료된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는 주경의 간병 가운데 아주 쾌속으로 병을 이긴 것이다. 여러 약 가운데 가족의 사랑, 사랑의 묘약이 치료를 촉진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며느리가 오면, 그가 체류하는 채 열흘이 못되는 기간이지만 환자의 용태가 훨씬 좋아지리라 믿는다. 터널의 끝은 점점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