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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

[주일 설교 2014/11/2]
  • 2014.11.02
  • 조회수 2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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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2014년 11월 2일 (일)
“제자입니까?”
막 8:27-34
말씀 한의준 목사
기도 김오성 권사

후안 칼로스 오티스 목사는 그의 저서의 제목에서, “제자입니까?” 라고 묻는다. 그는 알젠틴에서 교회를 세우고 가든 그로브의 수정교회에서도 사역했다. 교인이라고 진정한 예수의 제자인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가? 자기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우리 영적 성장과 비례하는가? 저자는 이를 비판한다. 내 중심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는 제5복음이라 풍자하였다. 옛날에도 예수를 따르는 자마다 제자는 아니였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제자는 누구인가?

예수를 향한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제자의 정체성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셨다. 때는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단계였다. 예수는 예루살렘과 반대 방향인 빌립보 가이사랴로 가신다. 헬몬산 정상에 만년설이 보이는 빌립보 가이사랴는 분봉왕 헤롯 빌립이 세운 도시다. 가이사랴는 황제를 의미한다.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1) 황제의 위엄에 걸맞는 큰 도시여야 하고, 2) 도시 중심이나 높은 곳에 황제 숭배의 신전이 있어야 한다. 이 도시는 이런 조건을 충족한 도시였다. 여기에 예수님이 가셨다. 예수는 이 도시의 위용에 비하여 대조적으로 초라하고 남루한 존재였다. 여기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위의 질문을 던지신다.
로마의 도시는 1) 힘을 상징하여, 화려한 석재로 웅장하다. 2) 지식, 도서관을 세우고 가정에는 서재가 있었다. 3) 육체미, 시가지에는 여신상과 육체가 아름다운 남자의 조각이 즐비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그런 도시였다.

질문에 대답하여 제자들이 답한다.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와 같다고 대답한다. 얼핏 칭송처럼 들리지만 황제 앞에서 신이라 불릴 수 없다는 한계를 뜻한다. 제자들의 답은 한계가 있었다. 예수는 “Who do you say I am?”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베드로가 옳은 답을 드린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드린다. 황제의 신전이 압도하는 환경에서 이런 고백을 한다.

주, Lord, 라는 고백,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아님을 말한다. 황제의 도시에서 이 깊은 고백이 행해 졌다. 황제가 신이 아니라 예수가 주라고 고백한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였다. 예수는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이런 고백은 이런 환경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돈, 지식, 이런 것으로는 세상을 압도할 수 없다. 구글은 나노 세포를 개발중이다. 이 세포는 인체에서 암세포의 위치를 찾아 스마트폰에 알려 주는 기술이다. 교회는 이런 지식에 대항할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으로만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예수를 따르는 . 제자가 되기 어렵다. 당시 사람들은 “가이사는 주님” “주님은 가이사”라고 인사하는 시대였다. 몇해전 콜로라도의 고교 총기 학살 사건에서 범인에게 하나님이 계시다고 끝까지 주장한 캐시 버넬이 총에 맞아 죽었다. 후에 이로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는 예수의 불을 집힌 것이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 반석 위에 세워졌다. 세상의 물결이 들어오면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잃는다. 예수님의 고난의 예시를 베드로는 항변했다. 예수는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제자는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자여야 한다. 삶의 우선순위. 바울은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귀한 가치이고 세상의 가치를 배설물처럼 쏟아 버렸다. 마6:33,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것이 우선순위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제자다. 왜 부인할까?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다. 십자가는 고통이지만 사명이기도 하다. 사명은 희생과 섬김과 봉사가 들어 있다. 만두 사역이 2주년을 맞이했다. 32000달러를 헌금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에수의 제자들이 공헌한다. 사명을 위해 자기를 부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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