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떠나다] 다시 둘만의 세상으로..
후드득 밤에 비 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건 잠깐이었다. 아침에 창밖을 내다 보니 비가 지나간 자죽이 있긴 있구나.
백척간두에서 벗어나 나날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삶이 감사하다. 아내는 거동이 꽤 원활하다. 진통제 때문일까, 통증도 가셨다. 집안에서 혼자 돌아 다니는데 큰 불편이 없다.
그간 멀리 워싱턴에서 달려와 곁을 지켰던 며느리 묘윤도 돌아 갔다. 허전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아들 주경이 먼저 달려 오고 이어서 며느리가 왔었지. 우연일까, 아니면 전능자의 보이지 않는 섭리였을까. 마침 아들은 바쁜 일이 지나갔을 때였다고 했다. 그러나 일상이 분주한 그가 처음 어머니가 다친 소식을 듣고 자기가 달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공직에 있는 그가 부모가 아프다고 일을 놓고 달려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내를 보내려고 기도하는 가운데 응답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몸이 아파 수술을 받은 아내를 보내려 하지 말고 네가 가거라 라는 음성이었다. 며느리는 부인과에서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망서리지 않고 주경이 달려 오고 묘윤이 8알 후에 왔다.
어제 공항에 데려다 주며 나는 처음으로 그녀가 수술을 받았음을 알았다. 며느리의 입을 통해서다. 물론 내게도 아내에게도 이것은 놀라운 뉴스였다. 주경은 십 여일이나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의 환난 중에 자신의 곤비를 발설해서 근심을 더하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자기 몸도 성치 않은데 먼 길을 달려 오고 정성을 다해 노부모를 섬긴 며느리가 고맙다 못해 가슴이 찌릿하다. 애처로운 것이다. 그녀가 갔다. 몸도 마음도 쉬고 더 건강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이리 크신지요? 다시 마음 속에 진한 감사를 느끼며 아침 산책에 나선다. 토요일이면 동네는 적막하다. 이 시간에는 모두가 늦잠을 자는 게 미국의 문화인 것을 여기 산지 13년이 되어서야 깨닫느다.